하락장이 길어질수록 손실을 눈으로 지켜보는 것보다, 잠깐 팔아뒀다가 더 싼 값에 돌아오는 편이 낫겠다는 계산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. "이왕 더 떨어질 거, 지금이라도 팔았다가 바닥에서 다시 사면 낫지 않을까"라는 생각입니다.
실제로 이 생각을 그대로 행동에 옮긴 사람이 있습니다. 개미투자자 A씨는 -20% 손실 구간에서 매도하고, "-30%까지 떨어지면 그때 재진입한다"는 나름의 기준까지 세워뒀습니다. 막연한 손절이 아니라 규칙에 따른 대응이니 합리적으로 보이지만, 이 규칙이 실제로 쓸 만한 전략인지 아니면 그럴듯해 보이기만 하는 함정인지는 말로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. A씨의 규칙을 실제 하락장 두 곳에 그대로 대입해 백테스트로 확인해보겠습니다.
2008년 시나리오 - 재진입해도 이어진 하락
규칙대로 팔고 다시 사도 더 깊은 하락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. A씨가 2008년 3월 10일 -24%에서 매도하고 -30%대에서 재진입에 성공했다 해도, 8개월 뒤인 11월 20일에는 -53%라는 더 깊은 붕괴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.
2007년 10월 1일부터 이 구간을 그대로 보유했을 경우: 총 투자원금 1억 원, 최종 평가금액 5,755만 원, 총수익률 -42.44%, MDD -53.28%(2008년 11월 20일), 손실기간 370일째 진행 중
여기서 A씨의 선택지는 다시 팔거나 버티거나 둘뿐입니다. 다시 판다면 새로운 재진입 기준을 또 세워야 하고, 더 떨어지면 팔고 반등하면 사는 퐁당퐁당이 반복됩니다. 이 과정에서 매매마다 붙는 수수료와 세금이 쌓이고, 타이밍이 어긋날 때마다 원금 자체가 야금야금 깎여나갑니다.
2020년 시나리오 - 놓쳐버린 반등
이번엔 규칙을 지킨 것 자체가 독이 됐습니다. A씨가 2020년 3월 12일 -25% 무렵에서 매도했지만, -30%는 오지 않았습니다. 시장은 두 달 만에 회복해 신고가를 갱신했습니다.
2020년 1월 1일부터 이 구간을 그대로 보유했을 경우: 최종 평가금액 1억 4,577만 원, 총수익률 +45.77%, MDD -28.56%(2020년 3월 16일), 손실기간 55일, 전고점 대비 손실기간 105일(회복까지 79일)
A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습니다. 매도가보다 비싼 신고가에 다시 사서 살 수 있는 수량 자체를 줄이거나, "지금 사면 상투 잡는 거 아닌가"라는 심리적 저항에 부딪혀 재진입 자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. 실제로는 후자가 훨씬 흔합니다.
두 시나리오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
A씨의 규칙은 어느 쪽으로 굴러가도 A씨를 편하게 해주지 않았습니다. 2008년에는 규칙을 지켜도 더 깊은 공포가 반복됐고, 2020년에는 규칙을 지켰기 때문에 오히려 회복장에서 밀려났습니다.
| 구분 | 2008년 시나리오 | 2020년 시나리오 |
|---|---|---|
| 매도 시점 | -24% | -25% |
| 재진입 결과 | -30%대 재진입 성공 → 8개월 뒤 -48% 재붕괴 | 재진입 기회(-30%) 자체가 오지 않음 |
| 남는 것 | 반복되는 공포 | 손실 확정 또는 시장 이탈 |
일희일비가 만드는 장기투자 실패
-20%, -30% 같은 기준선을 지키려는 노력 자체가 장기투자와 멀어지는 습관을 만듭니다. 기준선을 지키려면 지금 가격이 어딘지 계속 확인해야 하고, 그러다 보면 하루 종일 호가창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됩니다. 장기투자를 지키려고 만든 규칙이, 그 규칙을 지키는 행위 때문에 오히려 장기투자와 정반대되는 습관을 만들어버리는 역설입니다.
그래서 필요한 세 가지 원칙
타이밍 대신 붙잡아야 할 건 세 가지입니다.
만기 없는 돈으로 투자하기: 당장 써야 할 돈이 섞여 있으면 하락장에서 심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.
안정적인 현금흐름 확보하기: 생활비 이상의 고정 수입이 있어야 헐값에 파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습니다.
달러 자산 일부 보유하기: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아, 원화 환산 낙폭을 일부 상쇄해주는 완충 역할을 합니다.
맺음말
계좌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본다고 잔고가 늘어나는 건 아닙니다. 이왕 장기투자를 하기로 했다면, 우상향에 대한 믿음이 있는 우량 지수 하나 골라두고 등락에는 조금 초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. 먼 미래를 그리며 가는 여정이니까요.
